방송가에 휘몰아친 송승헌(22) 신드롬은 경이적이다. 그의 인기도는 어느덧 하늘을 찌르고 있지만 지금까지 그가 출연한 드라마는 단역을제외하면 고작 2개에 불과하다. 3개 공중파 방송은 그를 캐스팅하기위해 백지수표를 연상케 하는 조건을 제시하고 있고 충무로와 광고시장에서도 스카우트 표적 0순위로 떠오른 그다. 참신하고 터프한 인상으로 젊은 여성층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송승헌의 숨은 매력을 파헤친다. [편집자 주].
평범한 집안에서 평범한 아들로 자라온 나는 연예활동은 꿈도 꾸지못했다. 외모가 출중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끼가 넘치는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도 방송국 분장실에서 메이크업을 하거나 의상을 갈아 입으려면 불편하기 그지없고 취재진들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포즈를 요구하면 어색한 느낌에 괴롭기까지 하다.
내가 정말로 스타가 된 것인지 실감 나지 않을때가 많다.
다만 팬 사인회때 수많은 팬들이 장사진을 치고 기다리는 모습을보면 "내가 유명해지긴 했구나"라고 생각될 뿐이다.
평소 과묵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내가 연예계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우연히 이루어진 일이다.
지난 95년 가을이었다. 친구를 따라 우연히 광고 카탈로그 모델을 뽑는 스톰모델 선발대회에 지원서를 냈는데 2천여명의 지원자중 내가뽑히는 행운을 안아 모델로 데뷔하게 됐다.
이때 선발대회 심사위원으로 나왔던 김주한씨가 나에게 방송활동을권유했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만약 연예인이 된다면 연기자 보다는 가수가 훨씬 낫겠다고 생각했지만 노래에 자신이 없어 결국 탤런트를 지망하기로 결심했다.
이때부터 나는 매니저가 된 주한이 형과 함께 무작정 방송국 PD 선생님들을 찾아다녔다. 반응은 예상대로 냉담했다.
나를 향한 PD 선생님들의 눈초리는 "요즘 잘난 애들도 많은데 무조건 방송국 찾아온다고 될 일인가"라고 질책하는 듯 했다.
그렇지 않아도 연예인 지망을 쑥스럽게 생각하던 나는 당장 방송국건물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MBC 송창의 부장님과 이장수 감독님 정도가 처음 찾아간 나를 비교적 따뜻하게 대해주신 분들인데 그렇다고 당장 방송 출연건이 성사되지는 않았다.
집에 돌아온 나는 "역시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에 연기자의 꿈마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3∼4달쯤 시간을 허송하며 방황하고 있을때였다. 이장수감독님이 새로 준비하는 미니시리즈에 캐스팅하고 싶다며 나를 불렀다.
SBS TV `아름다운 그녀'라는 작품이었는데 처음 들어온 출연 제의라 믿어지지 않았다. 또 얼마 안 있어 송창의 부장님이 나를 시트콤`남자 셋 여자 셋'에 출연시키겠다고 했다. 나는 이제야 뭔가 일이될 것 같다는 느낌에 뛰는 가슴을 주체할수 없었다.
[나의청춘일기] 송승헌(2)
MBC TV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은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프로그램으로 평생동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데뷔작으로 드라마가 아닌 시트콤에 도전한 것은 우선 나의 연기력이 턱없이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남자 셋 여자 셋'의 대본은 연기 초보생인 나에게무리가 없도록 내 연기 실력이 늘어감에 따라 대사량도 조금씩 늘어갔다.
시트콤을 처음 하면서 함께 출연한 개그맨 신동엽 형은 나에게 더할나위없이 큰 도움이 됐다.
동엽이 형은 촬영이 끝나면 나를 자기 집에 데려가 끊임없이 연기에 대한 모니터와 조언을 해주고 방송활동에 대한 처세법을 알려주는등 데뷔 초기 나에게 꼭 필요한 선생님이었다.
이때 받은 도움이 너무 고마워 나중에 동엽이 형이 시트콤을 도중하차하고 환송 파티를 할땐 나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출 수없었다.
어쨌든 `남자 셋 여자 셋'에선 승헌이의 남성다운 이미지와 선한인상이 크게 어필했던 것 같다.
97년 봄부터 서서히 물이 오르기 시작한 나의 유명세는 주말극 `그대 그리고 나'에 캐스팅 될 가을 무렵엔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하루에 1천여통의 팬레터가 쏟아졌고 사인회에 나가면 1시간 내내팔이 떨어져라 사인을 해도 줄을 서 기다리는 팬들의 행렬이 끊어지지않았다.
그러나 방송활동은 나로서는 적응하기 힘든 점이 너무 많았다.
우선 나는 다른 연예인들처럼 고급 외제 승용차에 화려한 차림과는거리가 멀었다.
데뷔 초기엔 촬영이 있는날 안암동 집에서 MBC가 위치한 여의도까지 지하철과 택시를 번갈아 타고 다녔는데 나중엔 안되겠다 싶어 아반테 승용차를 할부로 장만했다.
남들에 비해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진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주위에서 나를 시기하고 모욕하는 사람들마저 생겨날땐 중간에 몇번이고연기를 그만두고 싶었다.
수면시간이 부족한 것도 고통스러웠다.
보통 아침에 `남자 셋 여자 셋'의 야외 촬영이 시작되면 다음날 새벽 6시쯤 끝나는데 이른 아침 바로 다른 촬영 일정이 이어질땐 몸에서진이 다 빠져버린다.
그래서 나는 보통 촬영장 사이를 이동할때마다 잠을 청하고 촬영중간에도 다만 30∼40분이라도 틈이 생기면 잠을 잔다.
그래도 눈에는 항상 졸음이 꽉 차있어 비몽사몽간에 대사를 할때도한 두번이 아닌데 밥먹을 시간을 놓치기라도 할땐 평소 과묵한 성격의 나도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어릴때부터 배가 고픈 것은 절대로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지금도 난 야외 촬영이 있을땐 항상 빵이나 만두, 순대 등의 음식을 준비하고있다.
[나의청춘일기] 송승헌 (3)
1976년 10월 5일 서울 수유동에서 2남 1녀중 막내로 태어난 나는비교적 평범한 성장과정을 거쳐왔다.
보험업에 종사하시는 아버지 아래서 우리 가족들은 빠듯한 생활을 했지만 아버지는 아무리 어려워도 절대로 내색하지 않는 분이라나 역시 기가 죽지는 않았다.
오히려 부모님은 막내인 나를 특별히 귀여워해주셨는데 그래서인지 나는 무척 개구쟁이로 자랐다.
5살때쯤으로 기억이 난다. 나보다 3살 위인 경복이 형이 어느날아버지에게 자전거를 사 달라고 졸라 결국 자전거를 선물 받는데 성공했다.
뛸듯이 기뻐하던 형이 자전거를 신주 모시듯 장독대 위에 잘 세워놓았던날 밤. 나는 장독대로 올라가 형의 `보물 1호'인 자전거를아래로 내동댕이쳐 버렸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재미있는 것은 내 키보다 큰 자전거가장독대 아래로 떨어지며 내는 굉음을 의식해 던진 후엔 눈을 꼭 감고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는 것.
이러한 동작을 여러번 반복하다 아버지에게 들켜 즉시 안방으로연행(?)된 나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마도 어린 마음에 자전거를 탈 수 없는 내가 형이 큰 선물을받은 것이 무척 샘이 났던가 보다.
나는 당시 인기 TV외화인 `두 얼굴의 사나이'를 좋아했는데 주인공이 헐크로 변하는 순간마다 무서워서 엄마 뒤에 숨을 정도로 겁도많았다.
그러나 영훈초등학교땐 장난이 심해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면 신발을 숨겨놓아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친구들이 울면서 돌아갈 정도로 심술쟁이였다.
그러던 내가 서울사대부중에 진학하면서는 한층 철이 들었고 성적도 반에서 5등안에 드는 모범생으로 변모했다.
당 시 우리 담임은 학교에서 유일한 총각 선생님이었는데 선생님과 나는 방학때 수영장이나 볼링장에 놀러가곤 했다. 그런데 이 총각 선생님이 당시 미모의 처녀인 수학선생님에게 반해버렸다. 평소 수학 선생님이 나를 무척 총애하셨기 때문에 담임선생님은 나를 볼모로 삼아 구애 작전을 펼쳤다.
결국 선생님 두분은 가까워져 우리는 야외 공원으로 함께 소풍을가기도 했는데 나중에 결혼에 골인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영훈고등학교로 진학한 나는 서클인 학교 중창반 활동에 몰입하게 됐다.
당 시 학교 중창반은 오디션을 통해 반원들을 모집했는데 나는 첫날 오디션에서 보기 좋게 낙방하고 말았다. 그날 나는 중창반 고참 선배를 찾아가 중창반에 들어갈 수 있게해달라고 사정했다. 그러나 선배는 나에게 버스표 한장을 주며 집으로 돌아가라고 매몰차게 말했다.
언젠가 대학로 모 카페에서 MBC TV 주말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의야외녹화가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KBS 2TV `슈퍼선데이'의 야외 촬영이 잡히게 됐다.
카페 위층에서 `슈퍼선데이'의 미니 드라마 촬영을 위해 코믹 연기를 하며 깔깔대던 나는 곧바로 아래층으로 내려와 `그대 그리고 나'의 극중 어머니인 이경진 선배님과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찍느라혼이 났다.
두 프로그램의 분위기가 너무 대조적이라 감정이 전혀 잡히지 않아애를먹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위층 `슈퍼선데이'팀에서 아직 다 끝나지않았으니 빨리 올라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위층으로 올라가 촬영에 임하고 있는데 아래층에선 또 다시 나더러빨리 내려오라고 성화가 아닌가.
위층과 아래층의 줄다리기 사이에서 몇번이고 되풀이해 왔다갔다하면서 나는 정말 웃다가 울다가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줄줄이 스케줄에 쫓기다보면 촬영시간에 늦어 허둥지둥할 때도 많다.
하루는 경상북도 영덕에서 `그대 그리고 나'의 야외 촬영을 마치고밤에 서울로 올라왔다.
다음날 아침 일찍 `남자 셋 여자 셋'의 촬영이 이어졌기 때문인데나는 오전 8시 촬영지인 서강대앞에 도착해 한참동안 기다렸지만 촬영팀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잠도 부족해 잘됐다 싶어 근처 사우나에 가서 세수나 하고와야겠다며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뒤늦게 장소에 도착한 촬영팀이 내가 안 온줄 알고 난리 법석이 났다.
샤워를 마치고 재빨리 촬영장에 복귀했지만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없어 고개만 푹 숙이고 있을때 구원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바로 이의정 선배가 깜빡 잊고 가발을 놓고 왔다는 것이었다. 어차피가발을 가져올 때까지 촬영은 지연될 수 밖에 없었다. 촬영시간에 늦어 호통을 듣게 될 줄 알았던 나는 덕분에 근처 분식점에서 라면 먹을 시간까지 벌게 됐으니 의정 선배에게 뭐라고 고맙다고해야 할지….
앞서 밝힌 것처럼 나는 연예인이나 스타가 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까지 나를 만들어준 팬 여러분에게 특별히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인기는 뜬구름과 같은 것이므로 팬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연기력에 승부를 걸어 끝까지 좋은 연기자로 남는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사랑해주시는 많은 분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승헌이가 될 것을 약속드린다.
※다음호부터 MBC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과 SBS `기쁜 우리 토요일'에서 빛나는 재능을 발휘하고 있는 `아톰머리' 이의정의 청춘일기가연재됩니다.